시정기를 목숨과 맞바꾼 사관 한 명세

교육 방송에서 사관 안 명세(1518-1548)에 관한 얘기를 보면서 기록 문화는 조선 시대가 현재보다 훨씬 나았구나 하는 생각을 또 하게 되었다.

1545년 (인종 1) 이 기, 정 순붕 등이 을사 사화를 일으켜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데, 안 명세는 그 때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시정기에 적었다. 그런데, 1548 년 (명종 3) 이 기 등이 을사 사화를 정당화시키고자 무정보감을 만들 때, 동료 사관인 한 지원이 시정기 내용을 이 기, 정 순붕 등에게 밀고하였고, 이 때문에 안 명세는 국문을 당하였다.

시정기에는 인종의 장례식 전에 윤 임 등 세 대신을 죽인 것은 불행이었으며, 이 기 등이 무고한 선비들을 많이 죽였다는 사실 등이 적혀 있었다. 결국 안 명세는 자기가 쓴 시정기의 내용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내놓았다. 이를 "시정기 필화 사건"이라고 한다.

여기서 짐작컨대, 조선 시대에는 사관이 목숨을 내놓으면서 시정기를 고치지 않겠다고 하면, 아마도 시정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듯 하다.

오늘날은 어떤가? 첫째는, 조선 시대처럼 그런 자세한 기록 체계 자체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둘째, 설사 누가 기록을 했다고 하더라도 중간 과정에서 누군가가 쉽게 없애버리거나 고칠 수도 있지 않나 한다. 우리 나라의 기록 문화는 뒷걸음질치고 있나? 안타까운 뿐이다.

사관 한 명세는 1567 년 선조 때 누명을 벗었다.

(2002(4335).09.11)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