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표준화 기구 회의에서 만난 북쪽 전문가 선생님들

* 이 글은 글로벌 스탠더드 (2002 년 겨울호, 통권 173 호), 한국 표준 협회, 산업 표준 연구원. 11-13 쪽에 실린 글입니다.

1992 년에 미국에서 막 돌아왔을 때, ISO/IEC 10646-1 (= KS X 1005-1,부호계 표는 Unicode와 거의 같음)이 확정되는 JTC1/SC2/WG2 22 차 회의에 한국 대표단으로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 회의에 참석하기 시작하여 2002.05 월에 더블린에서 열린 WG2 42 차 회의까지, 이제 11 년째 국제 표준화 분야에서 한글과 관련된 일을 해 오고 있다.

여러 가지 일이 많았지만, 그 가운데 2000 년 봄 WG2 38 차 회의부터 북쪽 선생들을 다섯 번째 계속 만나고 있는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많게는 한 번에 여섯 분이 올 때도 있었고, 적을 때는 두 분이었다. 남쪽에서는 주로 한 사람만 참석할 때가 많아서, 가끔 북쪽 선생들이 "왜 남쪽은 한 사람만 올 때가 많은가? 김 선생을 완전히 믿는 모양이지요?"하고 물었다. 그래서 "그야 출장비가 늘 한정되어 있으니 많이 못 오지요. 북쪽에 출장비가 더 많은 모양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웃은 적이 있다. 옛날 생각만 하는 동료들은 혹시 북쪽 대표가 아주 적대적이지 않은지 묻지만, 회의장에서 남북은 바로 옆에 사이좋게(?) 앉기도 하며, 쉬는 시간 등에 같이 많은 얘기를 나눈다. 다만, 만나서 얘기는 많이 하는데, 나중에 실제 추진하기로 결정되는 건 많지 않다! 북쪽을 위하여 통역(?)한 적도 있다. 미묘한 문제의 경우, 통역하기가 조심스럽다. 혹시 통역 과정에서 말장난(?)한다는 오해를 받을까봐서.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는 가만히 있는다.

글쓴이는 나라 밖으로 출장갈 때 김치, 라면 등을 가지고 가는 일은 없다. 무조건 현지에서 사먹을 수 있는 것을 먹는 것이 원칙이고, 또한 다른 나라 음식을 먹고 싶은 호기심이 늘 있다. 그런데 남쪽만 해도 서양 음식을 먹을 기회가 꽤 많은데 견주어, 아마도 북쪽 선생들은 그런 기회가 우리보다 적은 듯 하였다. 한 번은 북쪽 선생들과 같이 밥을 먹으로 가는데 시차와 음식 고생 때문에 북쪽 선생들이 좀 매콤한 것을 찾는 듯 한데, 한국 음식점은 전혀 없으니 이를 어찌 하랴. 그래도 가장 비슷한 게 중국 음식점이기에 한 군데 찾아갔는데, 주문하다보니 주인이 한국 분이었다. 그래서 김치, 고추 가루등이 들어간 차림표에도 없는 음식까지 잘 먹었던 기억이 난다.

현재 ISO 분야에서 북쪽이 활동하고 있는 곳은 SC2 (SC2/WG2 및 SC2/WG2/IRG 포함)뿐이다. 한글 로마자 적기와 관련하여 ISO/TC46에서 1987 년부터 몇 년 동안 남북이 자주 만났지만, 현재는 북쪽이 참석하지 않고 있다. 글쓴이도 북쪽 대표가 올 것을 기대하며 1997, 1998, 1999 년 잇달아 TC46/SC2 회의에 갔지만, 만나지 못하였다. 한글 로마자 적기는 이제 TC46에서도 관심이 거의 없어졌다. 1987 년 처음으로 한글 로마자 옮겨적기를 시작할 때는 TC46/SC2/WG4로 당당하게 WG 하나를 차지하였지만, 1997 년과 1998 년에는 WG4에 겨우 너댓 사람이 모여 회의를 했고, 1999 년에는 아예 WG4를 열지도 않았다. 1987 년 시작할 때는 다른 나라 사람들도 관심이 많았고, 나라 안에서도 관심이 많았지만, 열 해가 지나도록 남북이 단일안에 합의하지 못하자 TC46/SC2 안에서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없어졌다.

그러자 1999 년 TC46/SC2 회의에서 SC2 아래의 WG 10 개를 WG13, WG14 두 개로 재편하기로 결정하였으며, 결국 한글만 다루던 WG4는 없어지고, WG14에서 한글을 포함하여 모든 글자계를 한꺼번에 다루게 되었다. 사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2001 년 회의에서 SC2가 더 이상 활동이 활발하지 않기 때문에 SC2 자체를 없애고, SC2 일은 TC46 직할의 WG3 (TC46/WG3)에서 맡게 되어 버렸다. 간추려 보면 SC2 안의 독자적인 한글 WG으로 시작하여, 다음에는 WG 아홉 개가 하나로 통합되었다가, 이제는 SC2 자체가 없어지고 WG3으로 줄어드는 수난(?)을 당했다.

한글 로마자 옮겨적기가 없기 때문에 ISO/IEC 10646-1에서 한글 이름을 로마자로 적을 때 합리적인 해결 방안이 없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북쪽 선생들과 문자 부호계 일을 하면서 가장 가슴 아픈 때는 남북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합리적인 해결 방안이 거의 없을 때이다. 보기를 들어, 북쪽에서 ISO/IEC 10646에서 제기하는 두 가지 큰 문제는 "한글(HANGUL)"이라는 이름과 한글 글자마디의 가나다 차례이다.

한글을 북쪽에서는 조선글이라고 하는데, 한글이나 조선글 아닌 다른 합의안이 현재 없다. 그리고 그런 이름은 나라 전체적으로 합의가 되어야 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글쓴이의 혼자 힘으로는 어찌 할 수가 없다. 또한 남북의 가나다 차례가 다르다. 대표적인 것으로 북쪽은 첫소리 글자 이응(ㅇ)이 히읗(ㅎ)보다 뒤에 온다. 따라서 북쪽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 뒤에 "아버지, 어머니"가 온다. 이렇게 된 것은 해방 뒤 (6.25 전쟁 뒤) 북쪽에서 이른 바 문화어 사업을 하면서 새로 가나다 차례를 만들었기 때문인데, 현재 남북이 합의한 통일 가나다 차례는 없다.

글쓴이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북쪽 선생들에게 두 가지 얘기를 한다. 첫째, "아, 북쪽이 별나서 1954 년에 가나다 차례를 새로 만드는 바람에 이리 되었소. 남쪽처럼 해방 전 것을 그대로 쓰고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을텐데... 아, 가나다 차례에 무슨 사상이 있소?". 이에 대해 북쪽 선생들은 별 말이 없다. 남쪽은 해방 전 것을 그대로 이어받아 쓰고 있고, 북쪽이 바꾼 것이 사실이니까.

둘째, "ISO/IEC 10646-1이 확정되기 전인 1980 년대 말에 북쪽이 WG2에 활동했더라면, 지금쯤은 한글 가나다 차례 문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무언가 한 가지 방안이 나왔을텐데.... (아쉽습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북쪽이 1980 년대 말에 WG2에서 활동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늘 진하게 남는다.

한글의 가나다 차례를 비롯하여 한글은 국제화 (i18n: internationalization) 분야에서 해결할 일이 많다. 국제화는 SC22/WG20에서 맡고 있는데, WG20 활동이 1991 년부터 시작하였지만, 남쪽은 2001 년에 글쓴이가 처음 WG20 회의에 참석하기까지 10 년 동안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북쪽도 마찬가지였다. 북쪽이 한글 가나다 차례에 관심을 많이 보이자, WG20 활동을 하던 다른 나라 대표들이 북쪽에 WG20 활동을 권유하였고 결국 남북은 2001 년에 모두 SC22 P 회원이 되었다.

그런데 남쪽은 2001 년 봄 WG20 20 차 회의부터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북쪽은 어쩐 일인지 아직 한 번도 WG20 회의에 오지 않았다. 북쪽이 WG20 활동을 활발하게 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고, 2001.10 월 미국에서 열린 WG20 21 차 회의에는 참석하려고 준비까지 했는데 특수한 상황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듯 하였으며, 2002 년 22 차 회의에는 참석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2002.06 월에 열린 WG20 22 차 회의에도 오지 않았는데, 2003.02 월에 부산에서 열리는 WG20 23 차 회의에 북쪽이 올지 한 번 기대해 본다.

가장 최근의 일로는 북쪽의 부호계인 국규 9566과 남쪽의 KS X 1001 (이른 바 완성형 한글 부호계) 사이의 바꿈표 만드는 일을 들 수 있다. 1994 년부터 남북 부호계 바꿈표 및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얘기가 있었는데, 국규 9566-93 (1993 년판)과 남쪽 KS X 1001 부호계 사이 바꿈 프로그램은 총련(하 민일 선생, 조선 대학교)에서 1996 년에 만들었고, 또한 중국(연변, 최 명수 주임)에서도 1997 년에 만들었다.

그런데 그 뒤 국규 9566 1997 년판은 엄청나게 바뀌었는데, 국규 9566 1997 년판과 KS X 1001 사이의 바꿈표나 프로그램은 아직 남쪽에 없다. 북쪽은 남쪽 자료를 가져가서 보아야 하므로, 북쪽에서는 이미 만들어서 쓰고 있다. 이 바꿈표에 관하여 북쪽에 여러 차례 협조를 요청하였으나 아무런 협조를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남쪽(부산대)에서 처음부터 만들 수 밖에 없었다.

글쓴이는 북쪽 대표에게 "국규 9566-97은 이미 웹에 전세계적으로 공개되어 있어서 전혀 비밀도 아니다. 다만 이미 북쪽이 한 일을 우리가 또 품을 들여서 되풀이할 필요가 없고, 또한 확실하지 않은 글자에 대하여는 북쪽의 의견을 존중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현재 바꿈표는 거의 다 정리되었으며, 몇 글자 확실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2002.11 월 베트남에서 열리는 IRG 회의에 가서 현재의 남쪽 진행 상황을 알려주고, 또한 확실하지 않은 글자를 포함하여 남쪽이 만든 바꿈표에 대하여 북쪽의 종합적인 의견을 물어볼 예정이다.

남북이 국제 회의나 국제 학회에서 만나서 토론하는 것은 자주 할수록 좋다고 본다. 국제 학회에서는 1994 년부터 북쪽 학자들을 만나기 시작하여, 모두 다섯 번 만났다. 이제 10 년쯤 되는데, 구체적인 열매라고 내세울만 한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처음에는 무언가 이루어보려고 했지만 쉽게 되는 것이 없어고, 그래서 이제는 마음을 달리 먹었다. 천천히 하자고. 그래도 길게 보면 뭔가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일한다. 10 년 경험으로 짐작해 보면, 우리보다 북쪽 전문가 각자의 재량권이 아주 적어 보이며, 그것 때문에 남북 협조에 어려움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자리를 빌어 앞으로 북쪽의 윗분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전문가에게 재량권을 줄 것을 부탁드린다.

특히 한글이 관련된 ISO 규격을 남북이 공동으로 한글로 옮기자고 늘 제안하였는데 아직 뚜렷한 결과는 없지만, 언젠가는 그 날이 올 것을 기대해본다. 북쪽 대표 만나는 것이 연애하는 것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가기 전부터 마음이 설레이고, 가서 무슨 얘기를 할까 고민하고, 가서 만나면 반갑고, 얘기하다 보면 때로 섭섭할 때도 있고. 이 글을 쓰는 시각에 북쪽 선생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참고. 한글 관련 자료는 http://HANGEUL.pnu.edu/hanguel/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02.09.08) * * *